제주 두모리의 마을 어귀에 놓인 이 건축은 마을의 길과 집의 질서를 다시 읽어 건축의 언어로 옮기는 태도로 시작되었다. 제주의 민가는 언제나 낮고 길게 땅에 놓이며 담과 마당, 올레길을 통해 외부와 내부, 공적과 사적의 관계를 섬세하게 조율해왔다. 이 건축 또한 그러한 전통적 태도를 해석하여 현대의 공간으로 이어가고자 했다. 주출입구에서부터 이어진 길은 올레길의 연속이다. 외부의 길은 건축 안으로 스며들며 건축 사이 공간에서의 시선의 교차안에서 리듬을 반복해 방문자의 시선을 조율한다. 이 길은 완충공간의 연속적 체험을 제공한다. 노출콘크리트의 무게감과 구운 대나무 입면의 따뜻한 촉감은 길의 흐름과 어울리며, 마치 담과 밭담이 반복되던 옛 마을 길을 새로운 질서 속에 소환한다. 방문자는 이 길을 걸으며 이미 건축의 풍경을 체험하고, 도착 전부터 건축적 여정에 몸을 담는다.
세 동은 서로 닮아 있지만 서로 다른 크기를 가지며 내부적으로는 서로 다른 풍경을 품는다. 전통 민가가 마을 안에서 같은 언어를 공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생활과 마당을 지녔던 것처럼, 이 집들 또한 같은 땅의 언어를 공유하면서 각기 다른 해석을 하였다. 첫 번째 집은 선큰된 키친과 리빙스페이스를 중심에 둔다. 바닥은 낮아져 마당처럼 감싸이고, 곡면 천장은 위로 열리며 확장성을 부여한다. 담으로 둘러싸인 내부는 시선을 아래로 모으는 동시에 위로 열리며, 파고드는 풍경과 솟아오르는 풍경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두 번째 집은 다공성의 구조를 택한다. 실내와 외부의 경계는 촘촘히 막히지 않고, 틈과 겹으로 이어진다. 어디서든 바람과 시선이 흐르고, 내부와 외부는 항상 교차한다. 이는 제주의 올레길과 마당의 반쯤 열린 구조를 닮았으며, 통과하는 풍경과 열린 관계를 드러낸다. 세 번째 집은 커플형 소규모 객실이다. 최소한의 내부 공간이 오히려 외부와의 밀착을 강화한다. 창과 마당은 내부의 일부가 되고, 머무는 이는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이는 밀착된 풍경과 적극적 외부성을 구현한다. 세 집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풍경을 해석하면서도, 모두 올레길의 연속 위에 놓인다. 마을의 길이 집 사이를 지나며, 담과 완충 공간이 그 사이를 메우며, 각 집은 서로 다른 풍경의 리듬을 부여한다.
각 동의 외곽은 물방울처럼 유기적인 곡선을 따라 형성되었다. 이는 비바람과 구릉, 제주의 돌담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흔적을 닮았다. 그러나 내부는 직선이 교차한다. 곡선은 자연의 흐름을 닮은 감각의 언어이고, 직선은 사람의 생활을 담은 합리적 언어이다. 두 언어의 긴장과 균형이 이 건축의 얼굴을 만든다. 구조는 철근콘크리트 벽식 구조와 일부 기둥을 병용하였다. 곡률이 큰 부분은 정밀하게 시공된 거푸집으로 구현되어, 매끄러운 노출 곡면을 현실화했다. 지붕은 낮게 드리워 바람을 흡수하며, 처마와 포치는 빛과 비를 걸러낸다. 외벽 하부는 현무암을 깔아 땅의 언어를 이어받고 상부는 석회질 미장으로 제주의 바람과 햇빛이 남기는 시간을 받아들인다. 곡선과 직선, 자연과 인간, 감각과 기능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빚어진 건축은 땅과 생활이 함께 조율한 풍경의 조각으로 완성된다.
중정은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면서 안쪽으로 깊게 열린 하늘을 품는 공간이다. 바람은 중정에서 속도를 늦추고, 빛은 벽에 부딪히며 부드럽게 걸러진다. 들리는 소리 또한 머금어져 외부와는 다른 리듬을 만든다. 앉아 있을 때와 서 있을 때 시선이 만나는 풍경이 달라지는 것은 중정이 가진 섬세한 장치다. 이 중정을 중심으로 집의 모든 공간이 조율된다. 주방에서 오래 머무는 시간도, 욕실에서 물소리와 체온이 만들어내는 감각도, 침실에서 암막과 환기가 만들어내는 다른 시간의 속도도 모두 중정을 경유하며 완성된다. 결국 중정은 외부와 내부, 빛과 바람, 시간과 감각을 매개하는 장치로서 집 전체를 관통하는 질서를 세운다. 이는 전통 민가의 마당이 지녔던 조율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확장한 것이며, 안쪽의 하늘을 열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건축적 장치다.
상록과 낙엽수의 혼합 식재는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시간의 흐름을 건축 안으로 끌어들인다. 밭담은 땅의 경계를 다듬는 동시에 대지 내 높낮이 차이를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침투형 포장은 빗물을 받아들여 물과 토양이 순환하는 구조를 만든다. 지붕에 모인 빗물이 집수정으로 흘러 다시 중정과 식재를 살리는 과정은 건축이 물의 흐름을 풍경의 리듬으로 바꾸는 방식이 된다. 식재 곶자왈의 숲을 압축해 들여온 듯한 구성을 따른다. 수형이 선명한 관목과 계절마다 빛깔을 달리하는 나무들이 교차하고, 음지식물과 이끼류가 바닥을 채워 위요된 공간에 작은 생태계를 만든다. 이는 담장 안쪽에서 마당이 살아 움직이며 계절의 전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재료 선택 역시 풍경의 성격을 드러낸다. 노출콘크리트는 땅의 단단한 질서를 반영하며 무게감을 부여하고, 구운 대나무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결을 통해 생활의 온기를 더한다. 차갑고 거친 표면과 따뜻하고 유연한 질감은 서로 대비하면서도 균형을 이루며 땅과 삶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경을 완성한다. 충돌이 아닌 조화의 긴장 속에서 건축은 또 하나의 조율된 풍경을 드러낸다.
휘움은 제주의 풍경 속에서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공간의 방식, 곧 생활의 태도와 풍경을 다루는 지혜를 기억의 차원에서 불러와 현대적 언어로 번역하려 한 시도이기도 하다. 중정의 내부는 제주 민가의 안마당을 떠올리게 한다. 외부의 풍광을 과시하기보다 안쪽에 모인 마당에서 빛과 바람을 걸러내며 생활을 중심에 두었던 태도는 이곳에서 또 다른 풍경으로 재해석되었다. 담으로 둘러싸인 중정은 차폐라기보다 머무는 이들의 시선을 조율하며 내부의 하늘을 열어 새로운 장면을 만든다. 여정을 따라가는 길과 돌담의 리듬은 올레길과 밭담의 기억을 이어받는다. 길은 직선으로 단숨에 목적지에 이르지 않고, 꺾이고 좁아졌다 넓어지며 시선을 가두었다가 풀어낸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방문자는 도착 이전에 이미 여러 겹의 풍경을 경험하고, 건축은 여정 자체를 기억의 풍경으로 편집한다. 세 동의 높이를 달리한 배치 또한 제주의 전통적 습관과 닮아있다. 제주의 가옥은 땅을 인위적으로 평탄하게 밀어내지 않고, 구릉과 현무암 지형 위에 겹겹이 얹히듯 자리 잡았다. 휘움 역시 땅의 높낮이를 받아들여 세 동을 어긋나게 배치함으로써, 서로의 시선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풍경을 품을 수 있게 했다. 풍경의 기억은 단절되지 않고, 새로운 시간 위에서 다시 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