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덜어낼수록 그 빈자리에 시간과 자연 그리고 그곳을 점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믿음을 담아 건축주가 직접 이름 붙인 허허당(虛虛堂)은 포항시 남구 연일읍 중명리에 자리한다. 낮은 야산을 등지고 작은 개천을 마주한 이 집은 아침에는 햇볕이 먼저 스며들고 저녁에는 산의 그림자가 천천히 내려앉는다. 비교적 넓고 완만한 대지와 뒤로 이어지는 야산은 이 집의 일상적인 배경이 된다. 이 집의 출발점은 다름 아닌 이러한 지형 조건이었다. 풍경을 차단하기보다 건축을 통해 내부로 끌어들이고 이미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인 뒤 그 안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의 질서를 찾고자 했다.
건축주 부부는 여생을 함께 보낼 수 있는 크지는 않지만 편안한 주택을 원했다. 장년의 부부가 함께 머무는 집이되 과장된 장식이나 특별한 형식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대신 땅과 가까운 집, 계절과 날씨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집 그리고 일상의 동선이 복잡하지 않고 수납공간이 많은 집을 바랐다. 이러한 요구는 결과적으로 ‘넓게 펼쳐진 낮은 집’이라는 방향으로 정리되었고 단층이라는 선택은 대지와의 접점을 최대한 풍부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이집은 대지의 길이 방향을 따라 흐르는 동선 축을 기준으로 구성이 된다. 중앙의 주출입구를 기준으로 집은 자연스럽게 세 개의 영역으로 나뉘는데, 북동측에는 주방과 공용 공간이 자리하고 남서측에는 여가 시간을 위한 선큰 거실이 놓인다. 동측에는 침실을 중심으로 한 사적인 영역이 배치된다. 이 세 영역 사이에는 외부 데크와 조경 공간이 끼어들며 집의 중심인 주방을 출발점으로 앞마당과 뒷마당, 전정과 후정을 가로지르는 시선과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겹치고 이어지도록 하였다.
지붕의 형상은 뒷산의 흐름을 따라 완만하게 형성된다. 산의 윤곽을 닮은 경사는 후정에 면한 큰 창과 맞물리며 뒷산의 녹음과 빛을 실내 깊숙이 끌어들인다. 이 집에 담기는 풍경은 바라보는 장면으로 머무르지 않고 실내 환경의 일부로 스며들며 공간의 성격을 만든다. 앞뒤로 열려 있는 마당 역시 외부에 따로 놓인 공간이 아니라 실내 생활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영역으로 계획되었다. 이러한 구성은 집 안에서의 움직임과 머무는 방식의 개념을 확장시켜준다.
실내 공간은 동선의 흐름에 따라 직선과 곡선이 교차하며 구성된다. 일부 벽은 부드럽게 휘어지며 시선을 완만하게 이끌고 벽을 따라 매립된 가구들은 공간을 나누기보다 전체를 정돈한다. 이러한 공간의 구분에 맞춰 일부 벽체에는 천연무늬목 마감을 하여 머무는 장소마다 온기와 아늑함의 밀도가 달라지게 하였다. 자연의 빛과 그림자는 그 위에 자연스럽게 투영되어 과장되지 않은 재료의 선택 속에서 공간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완성해 나간다.
공사 과정에서는 단층 대형 평면 특유의 구조적 안정성과 시공 정밀도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특히 곡면 벽체와 매립 가구의 정합, 대형 창호와 지붕 경사의 만남은 여러 차례의 조정과 현장 협의가 필요했다. 기존 프로젝트와 달리 구조, 마감, 가구 설계를 초반부터 함께 조율하며 진행한 점이 인상 깊었던 부분이었다. 이는 공정상 부담을 주기도 했지만,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만들어냈다.
준공 이후 건축주가 이 집을 사용하는 방식은 설계 의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아침에는 주방과 마당을 오가며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에는 후정에 면한 창가에 앉아 뒷산의 변화를 관찰 한다고 했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공간 자체가 일상의 장면을 만들어준다는 말이 기억에 깊이 남는다. 집이 생활을 규정하기보다 생활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허허당은 화려하거나 과장된 몸짓을 하는 집은 아니다. 그러나 땅과 풍경 그리고 이곳에의의 삶이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조율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담긴 작업이었다. 건축가로서 이번 주택설계를 통해‘오래 머물 수 있는 집’이 무엇인지 스스로 다시 묻게 했다. 결국 좋은 주택이란 시간이 쌓일수록 자연스러워지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이 집을 통해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