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을 법한 카페
대지는 포항공대가 위치해 있는 산등성이 반대편 사면에 자리 잡고 있다. 포항에서도 미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전방위적인 도시개발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곳도 그 흐름의 여파에서 크게 벗어난 곳은 아니다. 전형적인 택지개발이 이루어진 곳으로 소나무 숲을 깡그리 밀어젖혀 조성된 상가주택용 필지이다. 3m를 훌쩍 넘는 보강토 옹벽이 연달아 산등성이를 따라 조성되어 있어 삭막함을 넘어 과연 이곳에 카페가 가당키나 할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의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1차부지가 조성되어 있지만 2,3차 부지조성이 추가 계획되어 있어 아마도 이 대지의 주변은 거의 대부분의 나무들이 다 밀린 민둥산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카페는 도심지를 제외하고는 경관이 뛰어난 곳에 위치하거나 집객요소가 많은 곳에 자리 잡는 게 일반적이지만 상대적으로 이 대지의 컨디션은 사람들이 도보로 찾아오기 힘들거니와 송전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석양이 있는 원경이 전부인 곳이었다. 특히 앞으로 대지 주변에 들어서게 될 주택과 근린생활시설 건축물과의 관계성을 고려할 때 소음과 시선을 어떻게 조율할지에 대한 해법이 반드시 필요했다. 외부공간과의 관계성에 기대기보다 외부로의 시선에 최소한의 자유도를 주며 주어진 범주 안에서 다양하고 독특한 scene 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자생적 공간’을 의도했다.
유연한 ‘켜’
전통적으로 ‘담’이라는 건축적 요소는 안과 밖을 구분 짓는 영역설정이 그 목적이지만 이 것들이 높이나 형태 그리고 공간을 만들어가는 방식에 변화를 주면 공간에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현재 내가 머무르는 곳을 유지하지만 또 다음 공간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기도 하는데, 담의 ‘켜’를 만들어 기능적 역할을 넘어 장소를 규정하는 유동적이고도 변화되는 경계로서의 가능성을 갖게 할 수 있다. 특히 완충적 공간으로써의 켜는 이 대지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을 풀어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하였다. 도로에 면해 곧바로 연결되는 출입구를 만들기보다 만곡 되어 관입되는 특징적인 입면을 구성하여 이 곳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궁굼증을 자아내게 하고 인지성을 갖게 하도록 하였다. 태양의 궤적에 따라 그 이미지를 달리하는 그림자를 농밀하게 입면에 담아내니 무뚝뚝한 콘크리트의 얼굴에 다양한 표정을 담아낼 수 있었다. 카페공간의 필수 요소인 일종의 포토스팟을 만든 것이다.
수렴의 공간
만곡되어 관입되는 담을 따라 아치형태의 출입문에 다다르면 밖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하늘로 개방된 전정을 맞이하게 된다. 이 공간에서는 ‘담’에 의해 직조된 하늘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시각적 개방감과 아늑함을 동시에 갖도록 하였다. 외부공간에서 실내로 다다르기 위한 여정의 공간이면서도 부족한 영업공간의 확장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이 전정에는 아름다운 수형의 매화나무들과 함께 나지막한 조경요소들이 느슨하게 위치해있는데 하늘에서부터 바닥까지 깊게 드리워지는 햇살과 어우러져 따스함이 충만하다. 이 곳에서는 전정-실내공간-후정-원경으로 이어지는 시각적 연계가 가능해 분명 넓지 않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답답함이 들지 않는다. 특히 1층 천장에서부터 처마까지 연속된 역아치 형태를 그리는 천장마감 선이 외부로 확장되어 실내공간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답답함을 상쇄시켜주고 정면 그리고 하늘로의 개방감을 증폭시킨다. 이러한 공간들의 시각적인 교차를 통해 안과 밖의 여유로운 소통이 가능하게 된다. 높이 값을 달리하며 후정을 감사 안는 담은 원경으로 펼쳐지는 수려한 산세들과 석양빛을 카페 내부 공간으로 최대한 끌어들이면서도 공간의 분위기를 해칠 수 있는 외부 요소들의 시각적 간섭을 차단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애워싸고 있는 담의 형태를 따라 하늘을 수놓는 다양한 형태의 구름들이 그 공간을 그득 채워간다.
16.5m의 무주공간
카페의 내부공간은 철저히 투명성의 공간이길 바랬다. 16.5m에 이르는 실내공간이 오롯이 외부공간과 맞닿길 원했기 때문에 그 확장을 방해할 수 있는 기둥과 같은 건축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였다. 넓은 경간을 구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콘크리트와 철골구조가 결합된 구조를 선택하게 되었고 철골보의 형상과 위치에 맞춰 천장의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갔다. 1층 천장은 2층으로 연장되어 철골보를 활용한 테이블을 만들어내고 자연스럽게 2층 테라스의 platbox를 형하여 일체화된 형상을 갖게 된다.
조율하는 자연
각기 다른 형태의 마당을 소박하게 채운 조경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포근함을 안겨준다. 바위와 이끼 그리고 환경적 측면을 고려한 식재의 선택은 조경에 조예가 깊은 클라이언트의 작업물이다.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곡면을 이루는 담이 공간을 포근히 감싸 앉고 나지막이 안착된 조경요소들이 편안함을 더욱 증대시킨다. 특히 인공적인 구축물안에 담기는 조경요소라는 특수성 때문에 인위적인 배열이나 배치를 배제한 자연스러운 조경을 담아내려했다.
주출입구에서 경험한 곡면의 느낌이 2층 화장실에서도 연장된다. 조경과 어울어져 부드러운 형상을 취하고 있는 콘크리트벽체는 닫힌 듯 열린 공간들의 변주를 만들어내고 오며가며 얼핏 보이는 하늘과 어우러져 그 공간의 깊이를 더해간다.